호주에 51년 만에 처음으로 사이클론 알프레드가 골드코스트-브리즈번에 상륙했다. 기상청에서는 사이클론 예정 일주일 전부터 계속 경로와 강도를 예측하며 경고를 내보냈다. 폭우, 강풍, 해일까지 예상된다고 했고, 특히 해안가나 저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침수 위험이 크니 정전이나 통신 두절에 대비해 비상식량과 필수품을 챙기라고 권고했다.
50년 만에 찾아온 사이클론이라 그런지, 호주 사람들도 철저히 대비하는 모습이었다.
일단 우리 약국도 침수 위험 지대라서, 약국 내 아래 두개 선반에 있는 모든 물건들을 다 빼서 다른 곳으로 옮겼다. (다음 주에 출근해서 다시 정리할 생각하니 눈물이 차올라 내 마음도 침수...)
콜스나 울월스는 완전 싹 털렸고, 선반들이 텅텅 비어 있다. 물, 우유, 계란은 물론이고 빵이나 야채 같은 신선식품 코너도 전부 동났다. 흡사 사이클론 대비가 아니라 전쟁 대비 수준
학교도 이번 주 내내 캠퍼스 폐쇄를 공지했고, 가게들도 전부 문을 닫았다. 약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장님이 나는 해안가에 살아서 위험하니 목요일부터 출근하지 말라고 했다. 사이클론 예정일은 금요일인데, 하루 전부터 출근 금지라니 예상 못 한 전개였다.
태풍 뚫고 출근했던 K-직장인으로서는 어리둥절. 처음으로 호주에서 일하는 게 마음에 드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얼떨결에 강제 4일 연휴를 받게 됐다. 다음날 출근하지 말라는 통보를 받고 (신나게) 퇴근하던 날, 기름 넣으러 들른 주유소에서 역대급 대기줄을 보고 상황이 심각하다는 게 확 와닿았다. 골코 주유소에서 이렇게 긴 대기줄은 처음
갑자기 나 너무 안전불감증인가 하는 불안감과 동시에 나도 4일 동안 집에서 버틸 무언가를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 조급해졌다.
그래서 나름대로 비상 용품을 구비했다. 사이클론 온다고 BWS도 오후 2시에 문 닫아서 놓칠까봐 헐레벌떡 다녀옴. 사람들이 왜 콜스, 울리스 가서 싹쓸이 하는지 알 것 같았다. Panic buying 이었다.
연휴 사이클론 첫 날, 비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오전에는 길드 Zoom 워크샵이 있었다. 여유롭게 밥먹으면서 시작했는데, 워크샵 동안 카메라를 꼭 켜야 한다고 해서 결국 몰래 고개 숙여 밥을 먹었다. 예전에 쥬니어 네이버에서 슈의 과자 몰래 먹기 게임 하는 기분. 왜 이런 짓 할때 이상하게 신이나는 건지 누가 설명좀
그리고 오후부터 시작된 사이클론의 조짐. 골드코스트에서도 다른 동네에 사는 친구들은 사이클론 언제 오냐며 느긋했지만, 우리 동네는 직격타를 맞은 NSW 북쪽이랑 맞닿아 있어서 목요일 오후부터 비바람이 장난 아니었다.
바람이 너무 세서 창문 흔들리는 소리가 점점 커졌고(진심 창문 깨질까봐 침대도 창문이랑 떨어진 곳으로 옮김), 심지어 화장실 변기 안 물도 계속 벽에 부딪히면서 찰랑찰랑 소리가 났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변기 물 찰랑 소리였다.
금요일에는 콜스를 비롯해 거의 모든 가게들이 문을 닫았는데 진짜 밖으로 나갔다간 바로 죽을 수도 있을정도로 바람이 불었다. 영상에 담기지 않는다ㅠ 이제서야 보조배터리를 충전해 놓고, 촛불 찾아놓고, 물 받아놓기 시작
그리고 이제 하나둘씩 정전되는 집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주변이 전부 전멸된 상황에서 우리 아파트는 굳세게 살아남았다. 힘을 내 팜비치
심지어 사우스포트에 사는 동기들 집도 많이들 정전됐고, 심한 경우에는 단수까지 되서 근처 동기 집으로 피신하는 상황도 생겼다.
나는 원래도 밖순이라 집에 잘 안 붙어 있는데, 태풍 때문에 강제로 4일 집콕 생활을 해보니
ㅇ ㅏ 행복한 감옥이 있다면 이런 곳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턴을 시작하고 나서는 매일 약국 출근, 저녁에는 어딘가 나가고, 피곤한 상태로 집에 와서 바로 잠드는 생활을 반복하느라 내 자유 시간을 제대로 즐길 틈이 없었다.
최적의 상황은 아니지만, 강제로라도 집에서 쉬게 되면서 미뤄왔던 일도 하고, 취미 생활도 하다 보니 생각보다 집에 있는 게 꽤 괜찮다는 걸 깨닫고 있는 중.
((깜짝 놀람 주의))
하지만 날 이제 내보내줘....바깥 공기 쐬게해줘....출근하게 해줘....
말은 이렇게 했지만, 정말 큰 피해 없이 모두가 무사하길 바라며 🙏 Stay safe
++++
호주 퀸즐랜드 주정부에서 사이클론으로 피해 입은 주민들에게 소정의 보조금을 지급한다! 거의 퀸즐랜드 전지역에 지급하는 듯하고, 호주 운전면허증이 있으면 5분안에 신청 가능하니 신청하길! 피해 사실을 서술해야 하는데 대충, 폭우와 강풍으로 인해 슈퍼마켓이 문을 닫아 음식과 생필품을 구할 수 없었고, 위험한 날씨 때문에 외출 자체가 어려웠습니다 등 대략적으로 작성하면 됨
https://www.qld.gov.au/community/disasters-emergencies
Disaster support and recovery
Find information about what to do in a natural disaster or emergency including preparation, our crisis and support hotlines, and recovery after a disaster.
www.qld.gov.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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